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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별 한달살기

전기차만으로 한 달 살기 – 발리

by allthatnews0 2025. 7. 1.

도시의 바쁨을 뒤로하고 발리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한 가지 실험을 더해보고 싶었다. 바로 전기차만으로 모든 이동을 해결해보는 것이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전기차 인프라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지역이었고, 관광지 중심으로 충전소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차량은 현지 렌트 업체에서 제공하는 소형 전기 SUV였다. 소음이 거의 없고,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 이 차는 내 한 달간의 체류에 완벽한 이동 수단이 되었다.

전기차로 한달살기-발리

 

도심이 아닌, 발리의 다양한 지역을 전기차로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해보니 기존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동의 여유로움과 차분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료를 채우는 번거로움 없이 매일 숙소에서 간단히 충전하는 루틴은 점점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배터리 잔량을 관리하며 일정을 설계하는 일은 마치 새로운 여행 방식을 익히는 기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단순히 ‘탈것’을 바꾼 것이 아니라,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충전소를 찾아 떠나는 한달살기, 일상이 되다

전기차로만 한 달을 살아간다는 건, 단순히 자동차만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발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충전소 위치와 거리, 충전 방식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주요 관광지나 대형 리조트 근처에는 비교적 충전소가 잘 갖춰져 있었지만, 외곽 지역이나 산간 도로에는 여전히 인프라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이동 경로를 매일 아침 미리 계획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처음엔 불편하다고 느껴졌던 이 루틴이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재미있어졌다. 예를 들어, 하루 일정을 ‘충전소를 지나야 하는 루트’로 짜게 되면서 평소에는 가지 않았을 조용한 마을, 숨은 해변, 전통 재래시장 같은 곳들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충전을 핑계로 잠시 머무른 곳에서 뜻밖의 경험을 하기도 했고, 몇몇 로컬 가게 주인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결국, 충전소를 향한 길은 단순한 도착 지점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을 만들어주는 시작점이 되었다.

 

한 달 살기 동안 전기차가 만든 조용한 속도의 하루

내가 머문 숙소는 우붓 인근의 조용한 언덕 마을이었다. 새벽이면 안개가 내려앉고, 바나나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이었다. 이곳에서 전기차를 타고 움직이면, 정말로 ‘소리 없는 이동’이 가능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엔진 소음이 없다는 건 단순한 기술적 특징이 아니라, 감각의 확장과도 같았다. 차창을 통해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닭이 우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도 더 선명하게 들렸다.

전기차는 ‘조용한 탈것’이 아니라, 소리로부터 일상을 되찾는 수단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창문을 열고 라디오 대신 파도 소리를 들었다. 에어컨 대신 바람을 맞으며, 음악 대신 바깥 풍경을 배경 삼아 움직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매연 없는 차가 나를 포함해 누구의 호흡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었다. 거리에 있던 아이들이 내 차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때, 나는 그 미소에 죄책감 없이 답할 수 있었다.

 

지속 가능성을 한달동안 살아낸다는 의미

한 달이 지나고 전기차를 반납하던 날, 나는 주행 거리와 충전 횟수를 확인했다. 총 980km를 달렸고, 완속 충전을 기준으로 15회를 진행했다. 연료비는 거의 들지 않았고, 엔진 오일이나 정비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진짜 가치는 그런 숫자들이 아니었다. 전기차로만 살아본 이 한 달은, 내가 직접 ‘지속 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다는 자각을 준 시간이었다.

현지 시장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매일 충전을 하며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이동 경로를 미리 계획하는 하루하루는 더 깊은 계획성과 사려 깊은 선택을 동반하게 만들었다. 환경을 위해 뭔가 거창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나의 선택이 조금씩 이 세상을 덜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발리의 자연 속에서 전기차와 함께한 이 시간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앞으로도 나의 일상 속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낼 큰 변화에 대해 기대하게 만들었다.

 

낯선 기술이 일상이 되기까지의 한 달 살기 적응기

처음 전기차를 렌트했을 때, 나는 솔직히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충전은 얼마나 걸릴까? 중간에 방전되면 어떻게 하지? 주행 중 고장이 나면 대처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막상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전기차는 나에게 점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기술이 낯설었지만, 반복되는 사용과 작은 성공들이 모여 그것이 곧 일상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전기차를 이용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운전하는 방식’이었다. 가속은 부드럽게, 제동은 미리미리, 그리고 배터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에코 주행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특히 충전소를 찾는 과정은 번거롭기보다 오히려 생활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었다.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오늘은 어디를 들를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소를 탐험할 동기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충전소 근처에서 우연히 로컬 음식점을 발견해, 현지인들과 식사를 나누며 좋은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전기차를 쓰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기술이 내 삶의 속도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지만, 이젠 에너지를 아끼고, 주행 하나에도 신중해지는 태도가 생겼다.

또한, 전기차는 발리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기에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시동을 걸어도 엔진 소리는 없었고, 바다 앞 주차장에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차가 아니라 내가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졌고, 기술이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 가까워지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체험하게 했다. 전기차는 결국 낯선 기계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습관을 만드는 하나의 도구였고, 그 도구에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성장시키는 여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