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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별 한달살기

무주 산골 한 달 살기

by allthatnews0 2025. 6. 30.

도시에 살다 보면 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끝나는 하루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무기력하다. 그래서 나는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한 달간 휴대폰 없이 살아보자.’ 하지만 이 실험은 도심 한가운데에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전파가 거의 잡히지 않는 무주 산골로 들어갔다.

 

무주산골 한달


무주는 전북 내륙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내가 묵은 마을은 그중에서도 더 안쪽에 위치한 인구 80명 남짓한 작은 곳이었다. 통신 신호는 간헐적으로만 잡혔고, 마을에 유일한 슈퍼도 오후 6시면 문을 닫았다. 휴대폰은 입구에서 꺼내 작은 나무 상자에 넣었고, 그 순간부터 나의 한 달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연결이 끊기자, 오히려 나 자신과의 연결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알람도, 지도도, 채팅도 없었다. 오직 자연의 소리와 내 내면의 목소리만이 매일을 채워줬다.

 

정해진 루틴 없이 한 달을 살아가는 일상의 밀도

산골 생활에는 정확한 스케줄이 없다. 해가 뜨면 눈을 뜨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처음 며칠간 그 낯선 리듬에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차츰 몸이 환경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아침엔 마당의 장독대를 둘러보고, 산 아래로 내려가 물을 길어오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전에는 물을 마시는 행위가 그저 ‘텀블러를 들고 누르기’였다면, 이제는 물 한 바가지를 손에 들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하루의 의미가 되었다.
인터넷이 없는 하루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공간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낮에는 산길을 걷고, 밤에는 나무 장작을 때우며 책을 읽었다. 가끔 마을 어르신이 고구마를 건네주며 “전화도 안 되는 데서 뭐하러 사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응했다. 삶이란 결국 연결보다 경험이라는 걸 그제서야 실감했다. 디지털 세상에서 수없이 쌓아왔던 알림과 기록들은 사라졌지만, 이곳에서의 기억은 훨씬 깊고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산골의 침묵이 마음을 다시 정리해주다

도시의 소음은 익숙해지면 배경이 되지만, 산골의 침묵은 익숙해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밤이면 창밖에서 벌레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하나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처음엔 이 고요함이 무서웠다. 고요함이 크면 클수록 내 내면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내 안의 생각들이 질서를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뤄둔 고민들, 하지 못한 말들,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침묵 속에서 하나씩 정돈되었다.
나는 매일 밤, 손으로 일기를 썼다. 전에는 메모 앱에 끄적이던 단어들이 이제는 조심스럽게 종이에 내려앉았다. 전에는 순간의 감정을 바로 SNS에 올리곤 했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천천히 말을 건네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무슨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줬다. 산골의 침묵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욕심보다 필요를 우선하게 했고, 불안보다 호흡에 집중하게 했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되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한 달 살기 후 다시 도시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짐을 꾸릴 때, 나는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쥐었다. 알림 수백 개가 쏟아졌고,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어떤 것도 내 심박수를 높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연결의 노예가 아닌, 선택하는 주체가 되어 있었다. 무주 산골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기술을 거부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 아니라, 기술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준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도시에서도 하루의 절반은 휴대폰 없이 지내보려 한다. 퇴근 후엔 전원을 끄고, 아침엔 스마트폰 대신 일기를 펼친다. 산골에서 느꼈던 그 고요함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이 실험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무주 산골에서의 한달살기는 단순한 디지털 디톡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속도’를 버리고 ‘깊이’를 선택하는 훈련이었고, 삶을 다시 구조화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 달 살기 후 불편함은 사라지고, 손의 감각이 돌아오다

처음 무주 산골에 도착했을 때 가장 낯설었던 것은, 손에 늘 쥐고 있던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어딘가를 검색할 수도 없고, 음악을 틀 수도 없으며,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었다. 처음 며칠은 손이 어색했다. 빈 손으로 마당을 걷고, 빈 손으로 밥을 먹고, 빈 손으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시간이 흐르자 다시 감각이 깨어나는 신호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없이 걷는 산책은 예상보다 훨씬 몰입감이 높았다. 발밑의 흙이 무른지 단단한지,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의 밀도, 그리고 내 호흡의 깊이까지 느껴졌다. 이전에는 ‘촬영’하기 위해 바라봤던 풍경이, 이제는 ‘느끼기 위해’ 시야에 담겼다. 나는 손으로 장작을 쪼개고, 호미로 텃밭의 잡초를 뽑으며, 가마솥에 불을 붙였다. 그 과정에서 손은 다시 도구가 되었고, 몸은 다시 삶의 주체가 되었다.
도시에서는 손이 화면을 스치기만 했고, 감각은 대부분 디지털 자극에 의해 움직였다. 그러나 산골에서는 촉감, 온도, 무게 같은 구체적 감각들이 삶을 구성했다. 그렇게 나는 기술의 편의성에서 잠시 벗어나, 생활의 물리적 감각을 회복하는 경험을 통해 인간 본연의 리듬을 다시 맞출 수 있었다.

 

산속에서 스스로를 길들이는 마음의 루틴

무주에서의 한 달은 단지 자연 속에 머물렀다는 의미를 넘어서, 나 스스로를 길들이는 내적 훈련의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엔 적막이 두려웠다. 고요한 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마당을 걷는 것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루틴으로 아침을 준비하며, 같은 산길을 걷는 삶은 어느새 마음속 혼란을 정리해주는 프레임이 되어주었다.
도시에서는 늘 새로운 일정, 다양한 사람, 끊임없는 변수 속에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반응하듯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변수가 없다. 대신 루틴과 환경이 나를 감싸며 안정시켜주었다. 나는 매일 같은 나무 아래 앉아 글을 쓰고, 같은 곡선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사색했다. 그렇게 일정한 환경 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점차 줄어들었고, 평온이라는 감정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주에서의 루틴은 억지로 짜인 규칙이 아니라, 환경이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흐름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마음은 천천히 안정되고, 불안은 자연히 가라앉았다. 나는 이곳에서 마음이 ‘반응’보다 ‘존재’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산속의 고요함 덕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된 작고 단순한 행동들이 내면을 다듬어준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