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를 기획하면서 나는 한 가지 실험을 계획했다. ‘과연 하루 식비 1만 원 이하로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단순히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적은 예산으로도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식생활이 가능한지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물가가 낮고, 외식보다는 직접 요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렇게 선택한 나라가 바로 동유럽의 작은 나라, 몰도바였다.
몰도바는 아직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국가다. 하지만 현지 생활비가 유럽 평균보다 현저히 낮고, 지역 농산물이 풍부해 로컬 재료를 활용한 식생활 실험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수도 키시너우(Kishinev)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현지 시장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가족 없이 혼자 지내며, 오로지 현지 식재료와 최소한의 부엌 도구만을 활용해 하루 1만 원 이하의 식비로 한 달을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이 실험은 단순히 ‘얼마나 저렴하게 살 수 있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적은 예산으로도 얼마나 풍요로운 식사를 만들 수 있는지, 더 나아가 그런 생활이 정신적으로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지를 체험해보는 과정이었다. ‘적게 먹고 많이 절약하는’ 개념이 아니라, ‘적게 써도 풍요롭게 사는 법’을 실험하는 새로운 한달살기였다.
한 달 살기 동안의 몰도바 시장의 풍경 – 5,000원이면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첫 주에는 로컬 시장을 탐색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키시너우의 중심 시장은 규모가 꽤 크고,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 신선한 토마토 1kg에 한화로 약 700원, 감자 1kg은 500원도 하지 않았다. 치즈, 계란, 우유 같은 기본 식재료들도 한국 물가의 절반 수준 이하였다. 놀라운 건 가격뿐 아니라 품질이었다. 농약이나 유전자 조작보다 ‘신선한 수확’에 더 집중하는 이 지역의 식문화는 식재료 자체의 맛을 살릴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매일 아침 시장에 들러 그날 먹을 재료를 샀다. 하루 예산은 정확히 1만 원, 한화 기준 약 13유로 내외였다. 고기까지 포함시키기에는 무리일 수 있지만, 계란, 콩, 유제품, 채소, 빵, 과일 등으로도 훌륭한 식단 구성이 가능했다. 실제로 어떤 날은 8천 원을 쓰고도 양파, 당근, 토마토, 브로콜리, 요거트, 달걀 여섯 개, 사과 세 알을 살 수 있었다. 나머지 금액은 통밀빵이나 말린 허브 같은 부재료로 활용했다.
마트보다 시장을 고집한 이유는 가격 외에도 소통 때문이다. 상인들과 간단한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단어를 섞어가며 대화하면서, 음식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 현지에서 어떤 식으로 요리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내 식비 실험은 ‘절약’만이 아니라, 몰도바라는 나라의 식문화를 깊게 체험하는 통로가 되어갔다.
혼자 요리하는 일상 – 저예산 식사의 품격
부엌은 좁았고, 조리도구는 단출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직접 요리를 하기로 했다.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허용하고, 나머지 모든 식사는 직접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실험의 핵심은 ‘예산을 지키되, 식사의 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낯선 식재료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반복된 식사 루틴 속에서 요리 실력도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
아침엔 시장에서 산 빵과 요거트, 계란 프라이를 곁들이고, 점심은 토마토 스튜나 간단한 파스타, 저녁엔 감자와 브로콜리를 구워 만든 로컬식 샐러드. 하루 예산 1만 원 이하로도 충분히 ‘식탁다운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특히 몰도바 현지의 향신료와 절임 소스는 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핵심 요소였다. 값싼 재료라도 제대로 활용하면 ‘싸구려 식사’가 아닌 ‘현지 느낌 가득한 한 끼’로 탈바꿈했다.
식비를 줄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전략은 ‘계획적인 장보기’였다. 주 3회만 장을 보고, 사온 식재료를 조합해서 다양한 식단을 짰다. 이런 방식은 잔재료 낭비를 줄여주고, 매번 새로운 요리를 시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식사는 단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요리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 자체가 만족감을 안겨줬다. 돈을 적게 쓰면서도 식사 시간은 더 풍요로워졌고, 자연스럽게 ‘절제된 풍요’라는 개념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한 달 살기 후의 변화 – 절약이 아닌 전환의 감각
한 달이 지나자 나는 단지 예산을 지켰다는 사실보다, 내 생활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느꼈다. 아침마다 식재료를 고르는 감각, 요리의 순서를 익히는 루틴, 음식을 접시에 담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생활 감각의 재정비’가 되었다.
놀랍게도 체중은 소폭 줄었지만, 에너지 레벨은 더 높아졌고,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장도 편안했다. 정신적으로도 ‘내가 스스로 나를 먹이고 돌본다’는 자립감이 강해졌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도시에서 한 달을 살든 비슷한 구조로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식비 1만 원이라는 한계를 스트레스로 느끼기보다, ‘이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점이 이 실험의 핵심 결과였다.
이제 나는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가장 먼저 로컬 마켓을 찾는다. 냉장고의 상태와 조리도구를 체크하고, 일주일의 식단을 떠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잘 먹는 삶’이 꼭 비싸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몰도바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식비 관리의 기술만이 아니라, 먹고 사는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회였다. 적게 쓰되, 소중하게 먹는 삶. 그것이 이번 실험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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