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건별 한달살기

동네 책방 운영하며 한 달 살아보기

by allthatnews0 2025. 6. 30.

많은 사람은 동네 책방이 이제는 추억 속 공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마지막 남은 공간에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한달살기’라는 흔한 형식을 단순한 여행이 아닌 지역 서점 살리기 프로젝트로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동안 지방의 오래된 책방을 빌려 운영해보기로 했다. 그 책방은 30년 가까이 운영되다 최근 몇 년간 문을 닫은 곳이었다. 간판은 빛이 바랬고, 내부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그곳엔 여전히 책 냄새와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동네책방운영 한달살기

 

내가 책을 진열하는 순간, 멈춰 있던 공간은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손님 한 명 없이 책방을 지키는 시간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도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골목을 지나던 주민들이 유리창 너머를 힐끔 바라보다가, 어느 날은 문을 열고 “이 책방 다시 연 거예요?”라고 물어왔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책방 주인이 아니라 사라진 기억을 다시 꺼내는 안내자가 되었다.

 

한 달 살기 동안 한 권의 책으로 연결되는 느린 대화들

책방을 열고 2주가 지나자,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책을 사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한 공간을 찾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을 내어놓고, 다른 날은 손글씨로 쓴 책 추천 카드를 책 옆에 꽂아두었다. 그 책방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시집을 꺼내 30분 넘게 읽다가 웃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낯선 책 제목에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책을 매개로 시작된 대화는 가족 이야기로, 인생의 전환점으로 이어지곤 했다. 대형 서점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는 속도였다. 손님이 적은 날에도 공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책방 한켠에는 편지를 쓸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마련했고,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쓴 편지를 남기고 갔다. 나는 그 편지를 다시 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넣었다. 그렇게 책방은 상품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거점으로 바뀌어갔다.

 

한 달 동안의 책방 운영이 삶의 리듬을 바꾼다

이전에 나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확인하고, 알람에 맞춰 움직이며, 늘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책방에서의 한 달은 완전히 다른 시간의 흐름을 내게 안겨주었다. 아침에 문을 열기 전, 나는 직접 쓴 손글씨로 오늘의 추천 도서를 썼고, 어제 정리 못 한 책더미를 다시 배치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은 행위들이 나의 하루를 구성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고, 목표도 없는 하루는 오히려 내 삶의 호흡을 되찾게 만들었다.
책방에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여행자도 찾아왔다. 한 외국인은 이 동네 책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책방 한가운데에서 번역 앱을 켜며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나는 책방 주인이라는 역할을 넘어, 누군가의 하루를 환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책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연결되었고, 공간이 존재했기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한 달은 단순한 ‘책 판매’가 아닌, 지역과 사람, 기억과 감성이 연결되는 시스템을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그건 절대 온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고밀도의 체험이었다.

 

작은 공간이 전하는 지속 가능한 메시지

한 달이 끝날 무렵, 나는 책방을 정리하며 진심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이 공간은 비록 임시로 운영된 곳이었지만, 그 안에 쌓인 이야기는 결코 임시적이지 않았다. 어떤 이는 책을 사고 나가면서 “이런 공간이 동네에 꼭 필요했어요”라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매일 지나치던 길이 새롭게 느껴졌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책방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문화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작은 공간 하나가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의 감정을 환기시키며, 지역의 흐름을 다르게 만든다. 거창한 시스템이나 마케팅이 없어도, 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는 여전히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실천’의 힘을 목격했다. SNS에서 수많은 캠페인이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몸을 움직여 책방 문을 열고 사람을 맞이하는 일이 훨씬 강력했다. 그것이 바로 구체적인 변화였다. 한달간의 책방 운영은 끝났지만, 나는 그 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시 꺼내어 기록할 예정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다시 책을 펼치게 만든 시간이었다면, 이 한 달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동네에서 작은 책방의 문을 열 날이 올 것이다. 그때도 나는 같은 마음으로, 천천히 문을 열 것이다.

 

한 달 살기 책방이 열어준 또 다른 연결의 가능성

책방을 운영하던 중 어느 날은 동네 중학생들이 무리 지어 들어왔다. 그들은 처음엔 낯설어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각자 조용히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책방이 단지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 간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 모임을 제안했고, 한 주에 한 번,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가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떤 날은 "선생님, 책방 언제까지 열어요?"라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내가 이곳에서 한 역할의 가치를 느꼈다. 어른 손님뿐 아니라 아이들도 이 공간을 '다시 오고 싶은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방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지역 공동체의 감정적 허브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나서 쓴 짧은 소감문을 벽에 붙이는 ‘한 줄 서평 보드’를 만들자,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만의 문장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문장들은 때로 시 같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인생 문장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쓰는 글은 보기 드물지만, 그 손글씨들은 공간을 따뜻하게 채웠다. 책은 단지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쓰이고 공유되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촉매였다.

 

책방이 남긴 것은 흔적이 아닌 방향이었다

한 달간의 책방 운영을 마무리하며 나는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매일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손님이 어떤 책을 읽고 웃었는지까지.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지역의 숨결을 담은 작은 아카이브가 되었다.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이 이 동네 책방을 열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 기록들을 그대로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한달살기는 그렇게 공간의 생명력을 이어주는 씨앗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방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였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것들 속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느리게 축적되는 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책방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대신,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내가 떠난 후 이 공간은 다시 정적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 그 창문 너머로 책방의 불이 켜졌던 날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은 또 다른 점등의 계기가 될 것이다. 책방은 일시적인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삶의 구조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책 한 권의 힘은 때때로 그렇게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