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건별 한달살기

다문화 커뮤니티 중심 거주 지역에서 한 달 살기

by allthatnews0 2025. 7. 3.

여행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낯선 곳보다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여행지에서 감탄만 하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진짜 일상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시작된 실험이 바로 다문화 커뮤니티 중심 거주 지역에서의 한 달 살기였다. 관광지가 아닌, 다양한 언어와 식문화, 종교, 생활 방식이 섞여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는 일’은 단순한 체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다문화 커뮤니티 중심 거주 한달살기

 

내가 머문 지역은 유럽의 한 중형 도시 외곽에 자리한 이민자 밀집 거주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아랍, 동남아, 동유럽,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었고, 길을 걷기만 해도 여러 언어가 오갔다. 시장에서는 히잡을 쓴 아주머니와 힌두 전통 의상을 입은 상인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빵집에서는 한국인인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터키계 청년도 있었다.
국적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동네에서의 한 달은, 세상을 다시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문화 충돌’이 아니라 ‘문화 공존’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체감하게 되었다.

 

한 달살기 동안 언어는 다르지만 일상은 이어진다 – 공존의 리듬 속으로

처음 며칠은 주변 소음부터 낯설었다. 집 근처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 시장 골목에서 터지는 외국어의 리듬, 낯선 악센트의 인사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들이 반복될수록, 이상하게도 귀에 편안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었고, 모든 차이가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깔려 있었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옆 테이블은 불어, 오른쪽 테이블은 아랍어,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은 루마니아어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동네 빵집에 들렀다. 이집트 출신의 제빵사는 나에게 자신들의 전통 빵인 ‘에이쉬 발라디’를 설명해주며 몇 번이고 시식을 권했다. 언어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몸짓과 미소, 반복되는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저 ‘손님’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한 사람처럼 이 동네의 리듬 속에 들어가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공공 공간에서의 '배려 방식'이었다. 다문화 지역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이 있을 거란 우려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무례한 시선도 없었고, 문화적 차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단순히 ‘공존’이 아니라, 차이를 의식하되 그것을 존중하는 법을 실천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다양한 식문화와 종교가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다

다문화 커뮤니티에서 한 달을 살면, 자연스럽게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이 바로 식문화의 다양성이다. 아침에는 터키식 수플레와 함께 블랙티를 마셨고, 점심에는 모로코 스타일의 쿠스쿠스를 먹었으며, 저녁에는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단순히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넘어서, 각 나라의 식문화 속에 담긴 생활 철학과 정서까지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자주 가던 한 이라크 식당의 주인은 “우리 음식은 가족을 위한 것”이라며 매번 푸짐한 양을 담아줬고, 어느 날은 무료로 디저트까지 챙겨줬다. 그는 내게 “혼자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면,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다는 걸 알 거다”라고 말해줬다. 그 한마디는 음식이 단지 끼니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는 문화의 핵심임을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할랄 식당이 많은 덕분에 육류 섭취에 대한 부담도 줄었고, 각국 마트에서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재료들을 구경하며 소소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냉장고 안에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내 입맛도 점점 국제화되어 갔다. 결국 한 달이 지나자, 나는 한국식 반찬 하나 없이도 다양하고 만족스러운 식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은 이질감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다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창이었다.

 

다문화 커뮤니티에서의 한 달살기가 남긴 감정의 흔적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웃집 아이가 자기 생일이라며 케이크 조각을 건넸던 날, 어느 무슬림 할머니가 라마단을 마치고 나눠준 대추야자 한 알, 공원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건네준 바나나와 미소.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쌓였다. 나는 이 동네에서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방인으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주최한 주말 장터 행사였다. 각국의 음식과 수공예품이 펼쳐졌고, 거리 공연도 진행됐다. 나는 자연스럽게 행사에 섞여 구경하다가, 한 베트남인 가족과 나란히 앉아 함께 스프링롤을 먹게 되었다. 대화는 단순했지만, 그 시간은 무척 따뜻했다. 언어와 문화,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이건 그 어떤 관광지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살아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의 밀도였다.

다문화 커뮤니티 중심 거주 지역에서 한 달을 살아본 결과, 나는 더 이상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개념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그 다양성은 정체된 곳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거리였고, 음식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존중하는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낯선 것에 마음을 열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넓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긴 여행보다 짧은 체류 안에 더 선명하게 남는다.